안녕하세요

저는 대학교수로, 그리고 서울 소재의 부속병원에서 망막전문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큰 이슈가 있습니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이에 반발하고 있는 의사들, 그리고 강대강 대치로 맞서는 정부.

많은 환자들이 제 외래에 와서 이야기 합니다. 의사가 늘어나면 좋은 것 아니냐. 이렇게 교수님 진료실 앞에 앉아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

일단 제게 진료 받기 위해 기다려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만큼 제 실력이, 제 설명이 그 환자분께 신뢰를 주기에 기다려 주신 것이겠지요.

자화자찬을 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잘난체좀 해보겠습니다. 저 같이 수술을 잘하고, 진료도 잘하고, 설명도 잘 하는 안과 의사, 쉽게 만들어지지 않아요.

사람들은, 정부는, 의대에서 강의하고 가르치기만하면 모두 실력 좋은 의사가 되는 줄 아는 것 같습니다. 아뇨. 좋은 의사는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레지던트, 전임의를 하면서 많이 진료해보고, 많이 수술해보고, 많이 고민해보고, 그 과정에서 좋은 의사가 됩니다. 환자들이 많이 찾아와줘야 좋은 의사로 키워지는 거에요.

여기에 키포인트가 있는 겁니다. 의사를 키우는 건 “환자” 입니다.

2천명 의대를 증원해서 5년간 1만명의 인턴을, 레지던트를 양산하면 어떻게 될까요? 정부가 실체가 없는 지방의료를 살리겠다고 인턴/레지던트를 모두 지방에 배치했다고 가정할게요. 환자가 많이 갈까요? 실력있는 의사로 키워질까요? 지방의 인구감소로 도시가 붕괴하고 있는데, 찾아올 환자가 많을까요? 결국 그들은 경험을 쌓지 못한, 기대에 못미치는 의사가 됩니다. 이걸 깨닫게 된 지방 환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서울로 갈겁니다. 악순환은 반복될겁니다. 그러다가 인턴/레지던트를 잔뜩 배치만 해놓고 그만한 수익을 내지 못한 그 병원은 어떻게 될까요? 도산합니다.

오늘 오셔서 의사 늘어나면 좋은 거 아닙니까 하시던 환자분께 말씀드려 봅니다. 저런 의사한테 가시고 싶은가요? 증원되서 배출된, 환자분의 기대에 못미친 그 의사한테 가고 싶으세요? 환자분은 여전히 제 외래에 계실 겁니다. 왜냐하면 저 같이 실력있는 의사에게 진료받으나, 1만 양성 제도로 태어난 기대에 못미치는 의사에게 진료받으나 돈은 똑같이 내기 때문이죠.

지금도 간신히 저 같은 의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2천명 증원이라는 것은, 진하고 맛좋은 사골국물에 생수를 콸콸 쏟아 국인지 물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것괴 같습니다.

3분 진료보더라도 저 같이 수술 잘하고 진료도 잘하는 의사에게 진료 받고 싶으신건가요, 아니면 30분 진료 보는데 실력도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해서 늘 허덕이고 쩔쩔매고 합병증도 많이 생기는 의사에게 가고 싶으신가요? 양이 적더라도 진한 사골 국물을 드시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밍숭맹숭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맹탕을 드시고 싶으신건가요?

마잘난체 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마무리 합니다. 근데 어쩌겠어요? 제게 찾아와주신 많은 환자분들이 저를 이렇게 실력 좋은 의사로 만들어주신걸 :)

+ Recent posts